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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구역모임 공과

 

“영들을 분별하라”

 

1. 신앙고백(사도신경)

2. 찬송(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 3. 기도(담당자)

성경을 펴서 본문을 함께 읽어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한1서 4장 1절)

4. 말씀 : 요한1서 4:1-6

1) 분별의 기준은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요한일서는 마치 변주곡처럼 같은 주제(사랑)를 반복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가르칩니다. 오늘은 분별의 관점에서 사랑의 주제를 제시합니다.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권면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는지, 세상의 영들이 역사하는지 잘 분별해서 성령의 역사만을 좇으라는 것입니다. 꼭 신비한 영적인 존재들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배하는 생각, 가르침, 인생의 걸음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많은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와서 거짓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고백하는가 여부에 따라 분별할 수 있습니다(2,3절).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사랑을 믿고, 우리도 그분을 따라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겠다는 전적인 헌신이 포함됩니다(요일 2:22; 3:16; 4:9,10). 결국 사랑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나 자신도 그렇게 사랑하고자 하는가 하는 고백을 기준으로 성령의 역사를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적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미묘하게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는 미혹에 대해 두 번째와 세 번째 대지를 통해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2) 영생은 관계와 사귐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또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영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구원을 받도록 하십니다. 몸은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몸을 통해 서로 실제로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사랑이고 영생은 사랑 속에서 서로 사귀는 것에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이냐, 거짓 영의 사역이냐가 바로 여기서 드러납니다. 구원을 관계로 보느냐, 개인적인 성취로 보느냐. 영지주의적인 태도는 몸의 중요성, 관계의 중요성을 무시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갈등과 분쟁을 복음 안에서 해결하고, 의와 평화가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영혼이 높은 세계로 나아가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구원과 영생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도 이러한 잘못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사적이고 내면적인 것으로만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바르게 고백하는 자는 교회를 통해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이 우리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고 이 일에 힘쓰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3) 세상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분별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고백하는 것은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서 하나님의 의가 완성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 또한 우리의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방식으로 의를 이루는 일에 우리도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의의 원리에 대항합니다. 첫째는 강자의 논리, 가해자의 논리입니다. 소위 힘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유익과 혜택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의한 원리에 의해 오는 것인지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고도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이러한 자들을 향해 회개를 요청합니다. 욕심을 따르는 죄악된 세상 원리를 벗어버리고 의가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약자를 돌아보는 일에 힘쓰라 합니다. 또 누군가에게 해를 가했다면 그 사람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여 그것을 통해 사랑으로 의를 세우라 하십니다.

둘째는 약자의 논리, 피해자의 논리입니다. 그동안 억압받았던 약자와 피해자들이 이제는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있어야 하고 심지어 강자들의 세력을 무너뜨려야 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거짓 가르침은 미묘하게 우리를 미혹합니다. 피해자의 권리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제시되는 순간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세상의 가르침이 됩니다. 이런 논리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의는 모든 피해와 상처를 먼저 주께 가져와 내어놓고 치유 받으라 말합니다. 주께 받은 사랑을 통해 우리도 용납하고 사랑하여서 결국 악인이 변화되어 주께 돌아오게 하는 사랑의 의를 세우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강자의 논리로 용서를 강요하거나, 약자의 논리로 가해자의 처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의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워가는 하나님의 의의 방식으로 서로를 대해야 합니다. 가해자는 철저한 회개로, 피해자는 주의 사랑으로 치유받아 상대를 용서함으로 서로를 하나님의 의로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와 세상의 가르침을 잘 분별하여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5. 질문과 나눔

1) “영들”은 존재만(사탄, 귀신)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배하는 생각, 가르침, 가치관 등이 포함됩니다. 그동안 악한 영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이것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2)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의미를 나누어봅시다.

3) 구원 받은 사람은 천국이 보장되었는데도 왜 이 땅에서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까?

4) 누구나 강자(가해자)가 될 때도 있고, 약자(피해자)가 될 때가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리에 빠져 실수한 적은 없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5) 고백 공동체는 교회내의 죄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6. 기도제목 나눔

7. 찬송(187장, 비둘기같이 온유한) / 8. 마침 및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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