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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구역모임 공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 신앙고백(사도신경)

2. 찬송(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 3. 기도(담당자)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4. 말씀 : 요한1서 4:20-21

 

성도는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받은 것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합니다(요일 4:19, 21). 이것이 요한1서 4장의 결론입니다. 여기서 요한은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라 강조합니다(20절). 보는 바 형제는 교회 안에서 계속 보고 부딪히는 사람, 다 사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원수까지도 ‘보는 바 형제’, 즉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원수를 친구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우리 역시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약 ‘보는 바 형제’를 회피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실제 우리 곁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보는 바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2) 보는 바 형제자매를 외면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것들을 조심합시다.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 요한 사도가 말하는 사랑의 결론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당시 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의 편지를 받은 교회에는 소수의 무리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며 교회를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지고의 덕과 아름다움을 하나님이라 여겼고, 그 경지에 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들 중 아주 소수만이 영적 엘리트가 되었고, 그들은 자기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을 멀리하고 배제시킴으로써 형제 사랑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자들은 보는 바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습대로 비천하고 추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 그렇게 자신을 주셔서 우리를 건지시는 사랑을 베푸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이 사랑을 받았기에 보는 바 형제자매 그대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무리는 그것을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1세기의 문제라면 오늘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미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가 만든 이미지에 사로잡혀 실제 눈앞의 사람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보정된 사진, 모델 등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욕망이 담긴 이미지와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폄하하고 비관합니다. 청소년들은 아이돌의 패션, 행동거지, 음악과 노랫말에 담긴 이미지에 지배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이미지들이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착각하고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만든 가벼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문제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붙들기를 바랍니다. 청년들은 지나친 SNS 사용으로 인해 실제 형제자매와 교제하기를 도외시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형제자매와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복잡하고 때론 실망스럽기에 이를 피해 SNS로 도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는 바 형제’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장년들 역시도 세상의 흐름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 사랑으로 형제자매 사랑하기를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3) 새로운 교회당에서도 보는 바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일에 힘씁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게 될 새 예배당에서 형제자매 사랑을 위해 힘써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배의 자리에 함께 모여 서로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하나의 교회가 되며, 그 하나됨은 성찬에서 함께 앉아 먹는 데서 절정에 이르러 보이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그리스도와, 온 성도와 하나 되는 경험을 실제로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면 서로를 향한 샬롬의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새로운 예배당 건물에는 넓은 홀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그곳에서 잠시라도 성도들을 마주하고 얼굴을 보며 인사하길 바랍니다. 보는 바 형제가 누구인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기관과 구역이 열린 모임으로 서 가야 합니다. 자기 기관, 자기 구역만 챙긴다면 기관과 구역모임은 점점 폐쇄적인 모임이 될 것입니다. 자기 기관, 구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타 기관과 구역 사람들과도 교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교제의 장을 넓혀나가되 세대 간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참 사랑을 가르치고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때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경험할 때입니다. 복음의 증거가 우리 가운데 있을 때에 거기서 자녀들이 하나님을 찾고 구할 것입니다. 성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동지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아서 실천할 때에 우리 자녀들도 함께 그 사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함께 걸어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5. 질문과 나눔

1) 요한 1서 4장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2) 한 사람을 ‘이미지’로 평가해 본적 있으십니까? 그 평가와 그 사람이 달랐던 경험도 있으십니까? 이런 것들이 왜 보는 바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까?

3) 있는 그대로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 봅시다.

4) 새 예배당에서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위해 힘써야 될 일을 말씀을 바탕으로 나누어 봅시다.

 

6. 기도제목 나눔 / 7. 찬송(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 8. 마침 및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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