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월 추천도서 오직 은혜로(싱클레어 퍼거슨)를 읽고...
제2남선교회 김만영 집사
저자 싱클레어 퍼거슨은 미국 사우스 캘로라이나 컬럼비아의 유서 깊은 "제일장로교회" 담임목사이며, 텍사스 댈러스 리디머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리고니어 성경신학 연구원 목회학 박사과정 객원교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즈 강사로 활동 중에 있다.
스카틀랜드에서 출생한 퍼거슨은 스카틀랜드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고국에서 약 16년동안목회 사역에 종사했다. 주 사역지는 글래스고의 세인트조지트론 교회다. 그외 1983년~1998년까지 필라델피아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배너 오브 트루스(Banner of Truth Trust)"란 출판사의 이사이며, 고백적 복음주의자 연합(Alliance of Confessing Evangelicals) 협의회 의원이다.
대표 저작으로 [성령], [성도의 삶],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 복음 중심의 삶] 등이 있다.
저자는 '엠마누엘 시보마나'라는 아프리카 목사가 지은 한편의 찬송가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놀라워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영적 건강이란 기독교 복음을 얼마나 확고하고도 실속있게 이해하고, 예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며, 성장하는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놀라워하며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가 많다. 당연한 하나님의 은혜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으며, 더러는 은혜가 되지도 못한다. 안타깝지만 익숙한 은혜를 노래하고 있으며, 은혜가 놀랍게 느껴질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기쁨과 활력을 잃고 말았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놀라워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은혜안에 살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은혜는 물건이 아니다. 측정하거나 분배할 수 있는 상품도 아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고후 13:13)'이고, 은혜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1장 내 사슬이 끊어졌네.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자유를 준다.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곧 해방이다. 죄의 속박을 깨뜨리고,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바로 해방이 이루어지고 계속 자유를 누린다. "오, 나를 놀라게하는 하나님의 은혜여!"로 시작하는 시보마나의 찬송가는 신자가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을 묘사하고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은혜의 바다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것이 바닥도 없고 한계도 없는 대양(大洋)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안에 깊이 잠기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은혜가 영원전 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나를 속박에서 풀어 주는' '죄의 사슬을 끊어 주는' 은혜이다.
2장 무조건적인 사랑
은혜의 필요성을 먼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비유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둘째 아들은 생명을 원했지만 정작 발견한 것은 생명을 가장한 죽음이었고, 나중에 놀랍게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둘째 아들의 요구는 잘못일 뿐 아니라 집안을 파멸로 몰아넣는 행위로써 자신만 망칠뿐 아니라 아버지까지 파멸 시킬 수 있었다. 고로 그는 영원히 버림받고 사형을 내려야하는 죄인으로 간주되었다. 하나님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살고자 했던 인간! 생명을 원했지만 죽음만 맛보게되었다. 그제서야 깨달음이 왔다.
하나님을 등진 자들의 모습은 지성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편견없이 하나님 바라보기를 싫어하며, 무관심하며 감정적으로나 지성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거리가 먼데도 달려가 돌아오는 아들을 맞이하되 여전히 자신의아들이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었다. 방탕한 아들을 용서하고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대가를 아버지가 스스로 짊어진 것이다. 이 아버지는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르킨다. 잃은 양을 구원하는 목자, 잃은 동전을 찿은 여인, 탕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아버지시다.
중요한 질문은 "이 비유속에서 구주이신 예수님을 보는가?"하는 것이다. 크나큰 치욕과 희생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모든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이 큰 은혜를, 사랑을보는가?
3장 하나님의 희생
제자들에게 까지 배반 당한 예수님, 아니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까지 버림 받은 예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마지막엔 영혼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셨다. 선지자요 제사장이며 왕으로 조롱받으신 예수님이 곧 구원자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의 의미는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주님은 내 대신 죽으셨다. 그 분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가 아닌가?
4장 대리 속죄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속죄를 이루고 구원과 칭의를 베풀기 위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셨다.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은 우리가 그 아들 예수를 영화롭게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복음은 그런 소외를 화해로 바꾸기 위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죄로 삼으심으로써 이루어진다. 화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다. 오직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그 의(義)를 전가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충족시키셨다. 믿음의 빈 손을 내밀어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그 순간 그 분의 희생이 나의 것이 되고, 모든 죄책과 죄의 속박에서 해방을 얻는다.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5장 보장된 안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은 즐겨 부르면서 은혜의 놀라움을 의식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이외로 많다. 그들에겐 은혜가 더 이상 놀라움이 아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한 발 물러 나는 순간 사탄의 예리한 공격이 기다리고 있음을 사람들은 망각하고 살아간다. 기독인들은 사탄의 불화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믿음의 방패가 필요하다. 그러나 믿음의 방패가 무엇이며,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또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그런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확신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나 때문에 예수님을 대신 내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신다는 확실한 증거요 확실한 믿음의 방패가 된다. 이 義(의)의 방패는 똟을수 있는 무기가 없다. 아무리 거친 사탄의 공격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안전함을 확신할 수 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기독인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말이겠지만, 그 믿음조차도 우리를구원하지는 못한다. 오직 '그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해야 맞는 대답이 된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만이 우리를 구원할 능력과 자격을 가졌고, 그 분이 구원사역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믿음의 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면 받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지켜주시며 마침내 고향에 도착하게 하신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안전은 보장되어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6장 악에서 구원 받다.
사탄의 간계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그 분의 은혜로운 성품에 대하여 왜곡시키려 한다. 사탄이 우리에게 불어 넣는 생각 중에 가장 악한 것은 죄의 유혹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게 하는 것이고,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꾄 사탄, 욥의 신뢰를 무너뜨리려한 사탄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롬 1:25)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내 갈 길이 어디인가?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오나? 이런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내 아들을 네 대신 내 주었다". 인생의 어두움을 경험할 때 가장먼저 찾아야할 곳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님 앞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분을 의지하라 그분 앞에서는 사탄의 간계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7장 진정한 자유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놀라워하기는 커녕 당연히 그런 은혜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은혜가 그토록 놀라운 이유는 은혜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1) 기독교인이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을 이유를 바울은 '기독교인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죄 가운데서 살 수 없다'고 입증한다. 은혜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기 때문에 은혜가 더 풍성히 넘칠 수록 죄를 덜 짓게 된다.
2)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의 권위에복종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3) 어떻게 죄에 대하여 죽었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죄에 대하여 죽었다. 그 분의 죽으심을 통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그 분의 부활하심을 통하여 새 생명에 참여한다.우리는 새로운 질서, 곧 죄가 아니라 은혜가 지배하는 현실에 참여한다.
4)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것은 우리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이 기정 사실화 되었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을 뿐 아니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생명, 손과 발, 음성, 보화, 시간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바쳐야 한다. 오직 주님의 영
광만을 구하며 그 분을 위해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삶을 다스리는 그 분의 은혜가 가득 흘러 넘칠 것이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는가?
"오직 은혜로!" 이 글을 읽고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 저는 예수님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나나 무수꾸리'라는 가수가 부르는 'Amazing Grace'라는 팝송을 흥얼 거리며 노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가 팝송으로 유명해 지기 전에 이미 찬송가 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더군요.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그 찬양을 부르면서도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도 없이 그냥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볼 때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참으로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Amazing Grace(깜짝 놀라운 은혜) 감격스러운 은혜로 감사의 눈물이 저절로 주르르 흘러 내리는 은혜로 경험하면서 누리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본서의 저자 싱클레어 퍼거슨도 저와 비슷한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첫 사랑을 버리지는 않았는가? 아니 버리지는 않았더라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았는가? 크신 사랑과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회복되어라.
주님께서 "그러나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신 말씀이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인 것만 같아 자꾸 생각 납니다.